- 인사해라. 전학생이다.


태어나서 전학이란 걸 처음 와보기도 하고,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교실도 또한 처음이기도 해서 무엇을 어찌할 지 모르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맨 앞자리에 앉아 가만히 날 쳐다보는 뿔테안경을 쓴 애, 그 옆자리에서 전학생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공책에 무언갈 적는 애. 그리고 또 뒷자리에 애, 그리고, 그리고…. 가만히 있는 내 모습에 담임선생님은 뭐하냐는듯이 어깨를 한 번 툭, 쳤다.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했다. 뭐 이렇게 하면 되는건가.


- 강승윤이야. 안녕.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약간 이상한 것 같아 더 어색하게 한쪽 손을 들어 흔들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박수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반가움을 기대하긴 했지만 시커먼한 남자애들은 딱히 반응이 없었다. 전학왔구나, 그렇구나, 하고 끝인 듯한. 담임선생님도 별다른 반응을 기대한건 아니었다는듯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리액션도 없어, 이 자식들은.


- 서울에서 전학 왔고, 사고 쳐서 온 건 아니니까 괜히 시비트지 마라. 알았냐.


예에.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들은 미적지근하다.


나는 여전히 담임선생님 옆에 서서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1분단을 이리저리, 2분단을 이리저리, 3분단을….


- 승윤이 넌 저기 끝자리 가서 앉으면 되겠다. 다들 오늘 하루도 수업 잘 듣고. 반장, 인사.


떠밀려지듯 옮겨진 걸음은 담임선생님의 손끝이 가리킨 곳으로 움직였다. 좀 전의 시선이 멈춘 그 곳으로. 반 아이들의 무관심 반, 흥미로움 반의 시선을 느끼며 걸어간 자리엔 그 두 가지 시선 중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을 가진 애가 앉아 있었다. 나 따위의 전학생은 흥미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서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그런 눈.


- 강승윤이야. 안녕.


나는 로봇처럼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또 뱉었다. 이번엔 어색하게 손 흔드는 것은 빼고. 한쪽 팔로 턱을 괴고 날 잠시 바라보던 그 애는 나른히 내 눈을 맞춰왔다. 고양이 같아. 찰나에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돌아올 대답을 기다렸던 내 마음을 짓누르기라도 하듯 그 애는 미련없이 반대편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타이밍 좋게 종이 울렸고 반 아이들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고3때 전학오는 애도 있어? 전학은 왜 왔어? 서울에서 이런 지방으로 왜 전학을 오냐? 야 너 키 좀 크다. 키 몇이야? 공부는 잘해? 몇 등급 나와? 많은 아이들이 몰린건 아니지만 다분히 소란스러웠고 좀전까지 관심없다는 눈빛을 보내던 녀석들이 이렇게 한 두마디씩 던져대니 더욱 더 어색해진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하나하나 대꾸를 시작했다. 부모님 일 때문에 오게 됐어. 키 180넘어. 공부 그냥 그래. 중간정도. 아니 2등급까진 아니고.


- 존나 시끄러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맞다 쟤가 있었지, 하는 아이들의 눈치.


찰나였지만 그 눈은 분명 맑은 사슴의 눈과 같았고, 하얀 피부는 빛을 혼자만 받은 것처럼 밝았다. 이런 느낌은 그냥…,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그 이미지에서 나올 법한 대사는 아니었다는게 승윤의 생각이었지만 반 아이들은 잠시 그 애의 존재를 잊었다는듯 눈치를 보며 어설프게 말을 정리하곤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살짝 몸을 일으켜 자기 할말만 하곤 다시 창가쪽으로 완전히 고개를 돌린 채 책상에 엎어진 그 애는 동그란 뒤통수만을 내게 보여줄 뿐이었다. 내가 아까 본 맑은 두 눈과 방금 들은 거친 언어는 딱히 어울리지 않아서 나는 한참을 그 뒤통수만 쳐다보았다. 결 좋은 머리칼은 책상위로 흐트러졌고 미동도 없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와 이 작고 동그란 뒤통수를 향한 시선이.













- 걔 원래 성격이 까탈스러워.

- 맞아. 뭐라고 해야하지…, 약간 여왕님 같다고 해야되나.

- 그게 다 송민호 때문이잖아. 송민호가 그렇게 버릇 들인거지 뭐.


같이 점심을 먹자고 다가온 3명의 무리는 급식소에 앉자마자 내가 묻지도 않은 그 애의 이야기를 먼저 줄줄이 읊어놓았다. 나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고 식판에 놓인 밥을 크게 한 숟가락 퍼 입 안으로 넣었다. 우걱우걱 씹어대며 방금 전 들었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까탈, 여왕님, 그리고 송민호.


그 애는 반에 딱히 친구는 없었다. 수업 시작 전까지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수업종이 울리자 자연스레 몸을 일으켜 서랍에서 책을 꺼냈다. 성의없이 급하게 적은듯한 이름 세 글자는 책 표지 구석에 작게 적혀있었고 하얗고 긴 손가락은 주저없이 오늘 수업하는 페이지를 펼쳤다. 수업 도중 중간중간마다 나는 그 애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펜을 쥐고 있는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툭, 하니 튀어나온게 아니라 톡, 하고 나온 것이 밉지 않고 고운게 자꾸 내 시선을 가져갔다. 여자애 같은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내아이 같아보이지도 않은 그 애의 손가락.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필기하는 모양새가 제법 모범생같은데 도저히 아까의 상황은 이해되지 않았다. 말썽을 피우는 것 같지도 않고, 폭력을 쓰거나 하는 애 같지도 않은데. 궁금함은 쌓였지만 정작 그 애는 전학생인 내게 조금의 관심따위도 없는 듯 보였다. 새 학기를 시작하고 옆자리가 비어져 있었는지 무의식 중 버릇처럼 필통이나 공책을 내 책상 위에 밀어두다가 내 팔에 닿자 그제서야 나를 한 번 힐끔보고 다시 자기 책상위로 물건을 가져가는 것 말고는 내게 이렇다할 시선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 저기 오네.


입 안에 있던 밥알들을 다 씹었을 때 옆에 앉은 애가 급식소 입구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바로 상체를 곧게 세우고 입구 쪽을 쳐다봤다. 그 애다. 고양이 같은 애. 손가락이 고운 애. 내 짝꿍. 그리고 그 옆에 선 송민호. 나는 직감적으로 좀 전까지 애들이 말하던 그 이름의 주인공을 알아볼 수 있었다.


- 쟤네는 꼭 사귀는거 같지 않냐.

- 좀 이상하긴 해. 송민호가 쟤를 워낙 감싸야지.


나를 밥을 한 숟가락 더 펐다. 음식을 씹으면서도 내 눈은 그 애를 향해있었다. 나란히 서서 급식을 받고 또 나란히 빈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것까지. 시선은 멈추지 않고 그 애를 쫓았다. 오전 내내 별 다른 말도, 별 다른 표정변화도 없던 그 애는 송민호 옆자리에 앉아 조잘조잘 입을 움직였다. 그리고 가끔씩은 입꼬리를 올려 웃기도 했다. 말 그대로였다. 좀 이상하긴 하다. 무엇이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김진우.


나는 혼자 책상에 앉아 옆 자리에 놓인 책 표지를 뚫어져라 보다가 끄트머리에 적힌 이름을 작게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꼭 그 애와 잘 어울렸다. 아직 5교시 수업이 시작하려면 10분이나 남았고 다른 자리도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역시나 내 옆자리도. 5교시 수업인 수리 책을 미리 꺼내놓은걸 보며 김진우는 되게 꼼꼼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도 애들은 김진우에 대한 얘기를 멈추지 않고 해댔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진우와 송민호에 대한 이야기를.


송민호가 우리학교 이사장 아들이라는 것과 또 어울리지 않게 미술 전공이라는 사실은 살짝 흥미로웠다. 여유있어 보이는 분위기는 집안 때문인건가. 까무잡잡해서 운동같은걸 하게 생겨서는 미술을 하다니. 나는 줄줄이 튀어나오는 송민호의 정보가 달갑지 않았다. 딱히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학교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은 이야기라는 건 그만큼 그 상대가 이곳에서 얼마나 이슈되는 사람인가였다. 아무래도 송민호는 그런 애였다. 어딜가도 눈에 띄는,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그런 애. 그에 비해 김진우는 그냥 평범했다. 아니지. 얼굴이 평범하지 않지. 나는 여전히 옆 자리에 놓인 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 오늘 전학왔다던 애가 니 짝꿍이야?


등 뒤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펜까지 놓쳤다.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방금 전까지 머릿 속에 꽉 차 있던 두 사람이 눈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송민호는 김진우의 어깨 위에 자연스레 팔을 올리고 있었다. 김진우는 송민호의 말에도 나는 관심없다는 듯 그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게 한 질문은 아니지만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이상한 것 같아 대꾸했다.


- 응. 오늘 전학왔어. 강승윤이야.


강승윤이야, 라는 말만 오늘 몇 번째인지. 나는 이름 말하는 기계마냥 또 내 이름을 뱉어냈다. 송민호는 살짝 웃으며 김진우의 어깨 위에 올려뒀던 손을 내리고 내게 내밀었다. 난 송민호.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반갑다는 식의 악수로 보여지지만 잠시 잡혔던 손은 분명 힘이 들어가 있었다. 찰나였지만 갑작스러운 힘에 내 손은 금방 붉어졌다. 괜시리 창피하게 느껴져 바지 주머니쪽으로 손을 옮겼다. 김진우의 시선이 느리게 나를 향했다.


- 수업 시작하겠다.


역시나 김진우는 내게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책만 필 뿐. 자리에 앉은 김진우의 뒷통수와 뒷목을 부드럽게 두어번 문지르던 송민호는 갈게, 라고 짧게 말한 뒤 그대로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손으로 김진우를 만지면서도 친절한 미소는 내게 여전히 보인채로.


나는 그 정도의 눈치도 없는 건 아니었다. 송민호는 자신의 것 옆에 앉아있는 생소한 전학생이 마음에 안들뿐이고, 아무 일도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경계를 하고 선을 그었다. 내꺼야, 라고 유치하게 티내는 것처럼. 그럴수록 나는 내 옆에 앉은 김진우가 더 궁금해졌다.
















- 야자 신청은 내일까지 생각해봐.


네. 담임선생님이 준 종이 몇 장을 반으로 접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학교가 끝나고 담임은 나를 따로 불러 오늘 하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적응 할 만 하냐, 괴롭히는 애들은 없냐는 질문들은 너무 고리타분 했다. 적응 못 해도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잘 안다. 담임도 혹여나 전학생이 사고를 치는 애는 아닐까 고민되었겠지만 나는 그런 쪽의 학생은 아니였다.


담임이 준 종이를 가방 앞 주머니에 대충 꽂아넣었다. 야자는 전 학교에서도 안했다. 학교보단 집이 더 집중이 잘 되는 편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있는 건 고문같았다.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3월 말의 해는 짧았다. 어두운 복도를 터덜터덜 걸었다.


본관 건물에서 나와 두어걸음 정도 옮겼을 때 별관 건물 2층에 불이 켜져 있는 교실을 발견했다. 지금 이 시간 별관엔 학생들이 쓰는 교실은 없다. 컴퓨터실이나 음악실, 미술실 같은게 있다고만 들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불 켜진 별관 교실을 바라보다가 아…, 하고 입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없이 학교 정문으로 향하던 방향을 틀어 별관으로 들어섰다.


복도는 고요했다. 중앙계단에만 불이 들어와 대체적으로 어두웠고 2층 복도 끝에 교실에서만 나오는 불빛을 따라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교실이 가까워질수록 ‘미술실 3’ 이라 적힌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운동화 소리까지 줄이며 걸었다. 고요한 이 복도가 내게 소리를 내면 안 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미술실 문은 닫혀있었다. 조용한 교실에선 이따금씩 쿵, 쿵 하는 책상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왔다. 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있었다. 역시 괜한 호기심이었다. 뭐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송민호와 그 옆에 있을 김진우라도 기대한건가. 점심시간에 들은 말 때문에 저절로 발이 움직인 것 뿐이었다. 무언가를 바란것도, 기대한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문을 열고 안에 있을 누군가를 확인 하는 것도 이상하겠지. 음, 맞아. 이상하지.


- 아…, 민호야…!


다시 별관을 벗어나기 위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조용했던 침묵이 깨졌다. 그리고 그 다음엔 다시 쿵, 쿵 소리.


상상력은 생각보다 꽤나 빠르게 머릿 속에 펼쳐지고 정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몸뚱이는 머릿 속의 그 상상을 확인 하기 위해 꽤나 대담하고 솔직하기도 하고. 나는 좀 전보다 더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미술실 앞 문을 지나 복도쪽 창문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그 사이에 또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복도쪽 창문은 불투명한 시트지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작게 손바닥 만큼 뜯겨진 시트지 사이로 유리창이 보였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숙였다. 보면 안 될 것을 훔쳐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비볐다. 훔쳐보는 모양새를 누군가가 본다면 꽤 추접스럽겠다.


밝은 미술실. 여러 개의 이젤과 의자. 바닥에 나뒹구는 붓들과 미술 도구들. 그리고 송민호의 단단한 등.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김진우의 것이 확실한 하얀 발.


씨발.


속으로 욕을 뱉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점심시간에 애들이 떠들던 것들과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전부 다 이상했다.


송민호의 허리짓에 책상이 밀릴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김진우의 다리 하나는 송민호의 허리에 감싸져 있었고 하나는 어깨에 걸쳐져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하늘하늘 거리는 하얀 발목이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송민호의 움직임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송민호가 움직일때마다 살짝씩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김진우가 신기루 같았다. 보이는 시야는 작고 김진우는 멀었기에 더욱 더 신기루같이 느껴졌다. 아까처럼 김진우의 소리가 복도에도 들릴정도로 튀어나오자 송민호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 두 개를 김진우의 입 속에 쑤셔넣어버렸다. 김진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헐떡이면서도 그 손을 부여잡고 핥아대는 모습이 아기고양이라도 된 것 마냥 간절해보였다.


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난 여기서 왜 이걸 훔쳐보고 있는건가. 내 자신을 이해하기엔 늦은 상태였다. 가방을 쥔 손 끝에 힘이 들어갔다.


띠리링. 띠리링.


아, 씨발. 좆됐다. 아까 교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진동을 풀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급하게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지만 다급한 나를 비웃듯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사이에도 핸드폰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씨발, 씨발, 씨발!


더는 미술실 안을 훔쳐볼 수 없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쥐고 그대로 뛰었다. 급하게 뛰는 바람에 몸이 앞으로 쏠려 넘어질 뻔 했지만 뒤돌아 보지 않고 뛰었고, 별관을 벗어나고 학교까지 벗어났다. 교문을 지나서도 몇 분간을 더 뛰고 나서야 나는 그제서야 발을 멈추고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뱉어냈다. 헥, 헥. 씨발.


이미 어느정도 멀어진 학교 였지만 여전히 뒤는 돌아보지 못했다. 뒤를 돌면 송민호와 김진우가 나란히 서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비웃겠지. 씨발. 뭔진 모르겠지만 존나 쪽팔렸다. 나를 봤을까. 못 봤겠지. 아, 창피하다. 진짜. 남의 섹스 훔쳐보다가 도망치는 꼴이라니.


곧바로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웠다. 저녁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까 전화했었던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늦는 다는 엄마는 오늘 전학 간 학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시큰둥은 커녕 짜증까지 섞인 내 대답에 그저 저녁먹고 쉬라는 말만 하곤 전화를 끊었다. 아직 저녁 8시도 되지 않았지만 방에 불을 끄고 누웠다.


눈을 감자 아까 보았던 둘이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졌다. 눈을 감으면 나는 다시 그 복도 였고, 작게 시트지가 뜯어진 구멍으로 미술실 안의 둘을 훔쳐보고 있었다. 셔츠만 입고 있던 송민호의 등은 다부졌고, 아랫도리가 다 벗겨진 상태인 김진우와는 달리 송민호는 바지도 살짝만 내린채였다. 그리고 김진우의 하얀 발가락, 발등, 발뒤꿈치, 발목, 그리고 종아리까지. 하늘하늘 춤을 추던 그 하얀 다리가 눈 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난 그 날 침대에 누워 자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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